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שֶׁלֶם (shelam – 화목제, peace offering)을 드렸습니다. 이는 단순한 제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회복된 관계 안에서 공동체가 함께 기뻐하는 거룩한 참여의 자리였습니다. 하나님께는 제물의 기름과 특정 부위가 드려지고, 제사장과 제물을 드린 자, 그리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남은 고기를 나누며 즐길 수 있었습니다(레위기 3장; 7:11–21). 이는 하나님과의 화목이 공동체 안의 기쁨과 사랑으로 이어져야 함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행위나 의로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화목을 이룰 수 없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οὐκ ἔστιν δίκαιος οὐδὲ εἷς, 롬 3:10)라는 말씀처럼,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תּוֹרָה, torah)을 완전하게 순종할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신정 체제 하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자체였고, 그것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는 역할을 했습니다(갈 3:24).

이러한 무력한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 곧 λόγος (logos)이신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나님의 어린 양(ἀμνὸς τοῦ θεοῦ, 요 1:29)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ἱλαστήριον (hilastērion, 화목제물, 롬 3:25)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단순한 상징이 아닌 실제적 속죄이며,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은혜의 사건입니다(고후 5:18–19).

그리스도와 화목한 자들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한 몸 된 교회를 이룹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며(엡 1:22–23), 말씀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말씀 대신 인간의 전통(παράδοσις), 형식, 의식에 집중하게 되면, 겉은 화려할지 모르나 그 중심에는 생명이 없고 결국 예수께서 책망하신 “강도의 소굴”(마 21:13)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중심에 두는 공동체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교회의 목적이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성도이며, 그 무리를 성경은 교회 (ἐκκλησία), 즉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단지 종교적 행위에 참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거하며 그리스도를 삶의 이유로 삼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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